<송일훈 칼럼>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의 『五輪書』에 보이는 만리일공(萬理一空)을 접한 최배달의 무도사상(2)

조원익 기자 | news@thesegye.com | 입력 2018-08-07 10: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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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배달(崔倍達)은 어린 시절 공수도(空手道)를 수련했다. 하지만 점차 실전과는 거리가 있는 전통공수도 수련법에 회의를 느꼈다. 이에 최배달은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의 <五輪書>를 접한 뒤 입산수도를 통해 자신만의 실전 공수도를 재정립한다. 그는 자신의 무도를 증명하기 위해 전 세계를 순회하며 각종 무도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게 된다. 최배달(崔倍達)은 거듭된 고수들과의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으며 실전 공수도의 우수성을 입증한 뒤 자신의 실전 공수도를 극진공수도라 했다.

 


 극진공수도는 '극진'이라는 의미와 '공수도'란 의미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극진 공수도를 진정 극진 공수도답게 해주는 것은 뒤의 ‘공수도’란 의미보다는 앞의 ‘극진’이라는 의미 때문이다. ‘공수도’란 글은 서술자에 따라 약간의 해석의 차이는 있으나 그 해석의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는 반면 ‘극진’이라는 글은 한자 자체의 특성상, 그 글 속에 이해하는 사람에 따라 그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매우 크다. “무도의 완성은 곧 인격의 완성이다." 극진공수도의 창시자인 최배달은 이러한 문구를 사용했다(범수학(2003), 『This is 최배달』, 찬우물 출판사).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인격의 ‘완성’이란 가능한 것일까! 그는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다만 인간은 죽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인격의 완성을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믿었다. 무도의 완성이 인격의 완성이라면 그리고 인격의 완성이 불가능하며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라면 ‘무도의 완성’ 또한 ‘인격의 완성’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배달은 각국의 무도 고수들과 싸웠고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최고이자 유아독존(唯我獨尊)인 완성된 무도가라고 하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고수(高手)는 많다"라는 최배달의 가르침은 하나의 결과에 만족하고 그것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겸손하게 자기 자신의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가 극진공수도란 용어를 처음부터 사용하면서 전 세계를 돌며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목숨을 건 수많은 실전 대결 속에서 자신만의 깨달음과 철학을 정립시킨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무도를 ‘극진공수도’라 이름 짓게 된다(月刊大山倍達(2004), 『特集: 1991~1994年の 大山倍達 第10号 第11号 第12号』, 月刊大山倍達出版社).

 
 이처럼 진정한 무도란 말보다 실천이 우선이라는 그의 믿음이 오늘날에도 ‘극진’이란 문구 속에 깊이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대다수 국가들에 극진공수도가 보급되어 있다. 이는 수많은 개성을 지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이름 아래 수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극진공수도라는 하나의 수련방법을 통하여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리를 향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극진공수도의 ‘극진’이란 순수하게 참된 목적을 향해 극(極)한의 최선과 노력을 진(眞)실로 다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는 ‘kyokushin spirit’이자 인간의 투쟁무술을 하나의 수행방법으로 승화시킨 극진공수도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유도의 그늘에 묻혀 공수도는 언제나 비주류의 무도였다. 그러나 당대 일본프로레슬링에 역도산(力道山)과 유도왕 기무라 마히코(木村正彦)가 있었다면 공수도에는 불세출의 입식격투계의 영웅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최배달이다.

 
 그의 탁월한 격투실력을 통해 공수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크게 성장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최배달은 전 일본 공수도 우승을 시작으로 일본 내의 유명 공수도가들을 모두 제압하고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가 하면, 세계의 고수들과 대결을 위해 무도수행을 떠난다. 그는 격투뿐만 아니라 사업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로 인하여 일본 내에서 공수도의 위치는 더욱 향상되었고 최배달은 교쿠신 가라테(極眞空手道)라는 문파를 창안하게 된다.

 
 그는 실전위주의 공수도라는 명제를 내세웠다. 기존의 정통파 공수도에서 탈피하여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의 <五輪書>와 더불어 세계 무도수행에서 보고배운 타 무도의 유용한 기술들을 흡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공수도를 재창조했다. 그로 인해 극진 공수도는 현시대 일본 내의 많은 공수도 유파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인기도 가장 높다(月刊大山倍達(2004), 『特集: 1991~1994年の 大山倍達 第10号 第11号 第12号』, 月刊大山倍達出版社).


 극진공수시합은 타 공수도 유파의 시합과는 다른 실전위주의 경기방식과, 격파의 도입, 차별적인 수련방식 등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공수도로 성장하였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수련인구를 자랑한다.
특히 그 시합의 관중동원 능력은 어느 유파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극진의 시합방식은 타 무도과도 다르고 자국의 여러 공수도의 시합과도 상당히 다르다. 이전까지 공수도의 조수(대련)는 주먹이라든지 발을 상대방의 몇 센티 앞에서 멈추거나 가상으로 치는 정도였는데 극진공수는 안면과 낭심을 주먹으로 가격하지 못하는 대신 글러브 없이 어디든지 가격할 수 있는 파격적인 룰로 시합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최배달은 자신의 평생을 ‘무(武)’에 바친 진정한 무도인 이었다. 그는 근대 일본의 전통무술 중 하나인 오끼나와 공수도에서 무료함을 느낀 후, 일격필살의 공수도를 창시하여 대련에서의 진검승부를 주장했으며, 무도계의 이단아로 낙인이 찍힌 후에는 이에 도전하는 당대 최고의 고수들을 직접 각개 격파한 인물이다(범수학(2003), 『This is 최배달』, 찬우물 출판사).


 그는 지상 최강의 격투기는 자신의 무(武)라 주장하며 세계적인 격투가나 맹우와의 싸움을 통하여, 자신의 몸으로써 그 강함을 증명하기도 하였다. 맥주병을 수도로 자르고, 돌도 부수었던 그 손은 ‘신의 손’이라 일컬어지며, 오늘날까지 전설로써 전해지고 있다. 이후 그는 점차 극진 공수도의 전승과 보급에 힘을 쏟게 되는데 처음으로 영문으로 발행된 공수도에서 ‘What is KARATE?’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의 무도의 바탕인,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의 <五輪書>를 접하게 된 최배달의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46년 와세다대 체육과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춥고 배고픈 낭인생활에 미국범죄수사국으로부터 추격도 심해진 가운데 당시 아사히신문에 연재되고 있던 인기작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의 "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를 우연히 접하게 되고, 그의 무도인생과 구도정신에 깊이 감명을 받아,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를 찾아가게 된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는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의 인생관처럼 "자기완성에의 고투"를 하고 싶다는 최배달에게 미군 범죄수사국의 추격도 피하고 자신과의 투쟁도 할 수 있는 입산수도를 권유하게 된다.
특히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은 가나가와현[神奈川縣]에서 출생한다. 본명은 히데쓰구[英次].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선구공(船具工) 등 여러 종류의 직업을 전전하며 청소년시절을 보냈다. 1925년 《검난여난(劍難女難)》으로 인정을 받았고, 《명문비첩(鳴門秘帖, 1926∼27)》으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했다.

 

 그 뒤 계속 오락 전기소설(傳奇小說)을 썼는데 점차로 구도적(求道的) 취향으로 기울어져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 1936∼39)》를 완성했다. 또한 《신헤이케[新平家]이야기(1950∼57)》 《사본태평기(私本太平記, 1958∼62)》 등 시대의 흐름이 살아 있는 인간상을 추구하여 국민문학의 제1인자가 되었다. 60년대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http://daum. net).


 이러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만남이 후일 최배달이 극진공수도를 세계에 명성을 떨치게 되는 시발점이 되리라는 것은 당시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와 헤어진 최배달은 자신의 무도인생에 영원한 스승이 된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의 "<五輪書>"를 품고, 지바현 남부에 있는 기요즈미 산으로 뼈를 깎는 수행의 길(道)을 떠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그의 영원한 스승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의 ‘인간은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용기를 가져라’라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칼럼에서 계속 연재한다.
송일훈 박사(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전)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연구교수
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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