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훈 칼럼> 퇴계 이황의 인간상 샘터와 현시대 인성교육의 정체성 담론(1)

조원익 기자 | news@thesegye.com | 입력 2018-05-15 10: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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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이란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이 생각하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관념이다. 이러한 관념은 인간으로서의 살아가는 도리와 이치에 있어서 깊은 바다 속의 물처럼 심오한 삶의 지침서이다.

 

 

 사상이라는 어머니는 도리와 이치라는 자식을 탄생시켜 생명을 준다. 즉 도리와 이치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탯줄 같은 존재인 동시에 생명을 유지하는 소중한 샘물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샘물을 만들어낸 위대한 학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퇴계 이황(1501~1570)이다. 그는 공직자, 교육자, 사상가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한 그의 업적의 뒤에는 덕을 담은 실천적인 인간상 신체활동의 교훈이 담겨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투호라는 샘터였다. 그는 투호를 통한 실천적 학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위대한 유산을 물러줄 수가 있었다.


 특히 퇴계 이황의 「언행록」에는 제자들에게 투호를 실시하게 하고 그 덕을 보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선생은 여러 학생들에게 투호를 시키고 그 덕을 보게 하였다(先生使諸生投壺 以觀其德).’ 여기에 등장하는 제생은 퇴계 이황로부터 학문을 배우는 사람으로 퇴계 이황의 문하생들을 뜻한다. 매킨타이어 보다 훨씬 앞서, 16세기의 퇴계 이황은 이미 덕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완성시켜 나갔다(이진수; 2001, 기철학의 이기론 중에 마음은 닦을 수 있는가에 관한 제목의 《한국체육사상사》에서 마음은 몸의 주가 되며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내용과 함께 결코 둘이 아닌 하나인데 하나인 마음이 다른 마음을 본다는 것은 맞지 않아 마음을 둘로 나누면 폐단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몸인가, 마음인가! 에 대한 메시지(message)가 있다.).
 당대 인간상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화로운 교육을 통한 전인적인 인간육성의 의미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육성은 지, 덕, 체가 초석이 되어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는 ‘지육·덕육·체육’의 총체적인 교육을 뜻한다.

 
 첫 번째, 지육이란 지식 혹은 지혜를 갈고 닦음을 의미하며 이는 현명한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두 번째, 덕육이란 인격을 갈고 닦음을 의미 한다. 세 번째, 체육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는 건강한 심신을 갈고 닦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 덕, 체 교육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는 몸과 마음과 심신의 정신을 골고루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한들 인성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며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다고 해도 신체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이는 다 소용이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 즉 지, 덕, 체를 골고루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시대의 교육은 지, 덕, 체 교육의 불균형으로 인해 각종 폐해를 낳고 있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지나치게 지육에 편중되어 있다. 이로 인한 심신의 부조화와 체력 저하 현상은 오늘날 학생들의 조화로운 성장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은 체육과목을 교육과정 시수에서 감소시킨 것 또한 그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선조들이 행했던 신체운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진수의 《한국체육사상사》에 보이는 덕으로서의 신체운동과 덕의 형성과정에 관한 내용이 있다.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신체사상을 찾을 수 있다. 덕은 득이며 득이란 몸에 갖춘 것인데 몸에 갖추었다는 것은 몸으로 하여 얻었다는 말이다. 체득이 바로 덕에 해당되는 말이다. 체득은 사람이 몸으로 얻은 능력이며 생각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즉 체험을 통해서 체득한다는 것이다. 무도의 수행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상대와의 대결이라는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체득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신체운동도 이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움직임의 체험을 통해 새로운 신체운동을 습득하여 다시 몸체로 얻을 득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 신체운동은 몸으로 얻는, 체득이 되어야만 하는 덕목이지만 관념화되어 몸과는 전혀 다른 길이며 우리의 몸을 떠나 독립된 실체처럼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유교에서 각 개인에게 요구하는 근본적인 덕목인 오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사람이 지켜야 할 지극한 덕 곧, 인, 의, 예, 지, 신을 말한다. 한대 이후로 유가의 기본적인 덕목들로 흔히 ‘오덕’ 혹은 ‘오상’이라 지칭된, 인, 의, 예, 지, 신은 맹자가 말한 인, 의, 예, 지에 동중서가 신을 더하여 정형화한 것이다. 이는 한대 이후 인, 의, 예, 지, 신은 각각 오행의 목, 금, 화, 수, 토에 조응되어 설명됐다.

 
 그 중에서도 ‘인’은 다섯 가지 덕목들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시 됐다. 그것은 맹자가 ‘측은지심’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듯이 기본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관심, 애정, 동정심을 갖는 것으로서 도덕적 행위의 근간이 되는 덕이다. 좁은 의미에서 ‘仁(타게우치(竹內照夫)는 ‘仁’의 개념을 ‘애정(愛の仁)’과 ‘덕성(德の仁)’으로 나눈다.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후자 곧 넓은 의미에서의 仁에는 義·禮·知가 모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은 사랑, 애정 등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그것은 인간에게 요구되는 덕목 전체이다. 진영첩은 전자를 ‘자비심(benevolence)’으로, 후자를 ‘인간성(humanity)’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이 행했던 그 인간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한국 성리학의 거목 퇴계 이황은 인간상을 통해 덕을 완성시켰고 또한 제자들에게 자기지론을 설파했다. 당대의 실천적 인간상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신체활동을 통해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득을 완성하여 인성함양을 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 덕, 체를 갖춘 조화로운 전인 인간상을 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퇴계 이황에 보이는 덕으로서의 투호의 신체관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지, 덕, 체가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진정한 의미를 심어주고자 퇴계 이황의 인간상에 대해 칼럼을 앞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송일훈 박사(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전)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연구교수
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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