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훈 칼럼> 조선의 르네상스시대, 정조대왕 무예관을 묻다(1)

조원익 기자 | news@thesegye.com | 입력 2017-10-12 11:21:11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 © 세계타임즈
 궁술의 활과 시위는 궁사의 심신합일이요, 궁사의 몸과 마음의 화살은 무심이니 과녁에 백발백중이로다. 이는 더 이상 얻고자 함이 없는 궁사의 마지막 화살을 허공으로 쏘아 비로소 무예지의 깨우침을 얻을 수가 있다. 궁술은 활을 과녁에 명중시키는 신체기법이며 이치이다. 깨달음 극치의 도는 아름다움 예술의 경지이다. 이를 실천하는 것은 궁사이다. 이 주안점은 몸과 마음이 혼연일치가 되어 무예지라는 정신적인 불빛의 과녁에 화살을 명중시킨다.

 


 궁술에 있어서 활을 쏘는 화살 ‘矢’ 字에 이를 넣는 입 ‘口’ 자를 합치면 알 ‘知’(矢+口=知) 자가 된다. 이는 ‘앎’, ‘깨달음’의 의미를 상징하는 행위였다. 궁술의 무예지의 이치와 사상이다.


 이러한 이치인 궁술 무예지의 깨달음을 통해 조선후기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이 있다. 그가 바로 정조(1752∼1800)이다. 그는 왕이자 무예지도자였으며 조선후기를 가장 대표하는 성군이었다. 그가 남긴 업적을 보면, 규장각의 설립, “일성록”의 편수, 장용영의 설립, 형정의 개혁, 궁차징세법의 폐지, “자휼전칙”의 반포, “서류소통절목”의 공포, 노비추쇄법의 폐지, 천세력의 제정 및 보급, 통공정책의 실시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시대의 무예인들에게 큰 감명을 준 서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무예도보통지”이다. 정조가 “무예도보통지”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였던 것은 국가의 안위였다. 그것은 상무정신이다. 본디 상무란 ‘무예를 숭상함’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조의 업적 뒷면에는 궁술의 무예지가 있었다. 그의 궁술의 실력은 입신의 경지에 도달한 신궁이었다. 그는 활을 쏘면 50대 중에 49대는 과녁에 명중시키고 1대는 무예지의 정신적인 불빛의 과녁인 허공으로 쏘아 문무백관들에게 군자로서 덕을 설파했다.

 
 특히 정조 16년이던 1792년 10월 30일 날의 “홍제전서” 제17권을 보면 이에 관한 궁술의 기사 내용이 보인다. 정조는 화살 50대 중에서 49개를 과녁에 명중시킨 후에 남은 하나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며 이르는 말이 “활쏘기는 참으로 군자의 경쟁이니, 군자는 남보다 더 앞서려 하지 않으며, 사물을 모두 차지하는 것도 기필하지 않는다.”
 궁술의 무예지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승부를 대하는 군자의 마음가짐을 잘 나타낸다. 승부가 군자의 마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군자는 이미 꾸밀 것도 없다.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다음은 그 무엇보다도 오르지 못한다는 말은 사심을 버려야 비로소 정상에 우뚝 설수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언제나 정사를 마친 후 정신통일을 위해 춘당대에 나가 활을 쏘았다. 궁술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자아를 완성시켜 나갔다. 이를 통해 그는 마음을 다스려 ‘平常心이 곧 道이다’라는 平常心是道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정조는 궁술 무예지에 보이는 평상심시도를 문무백관들에게 심어주기위해 춘당대에 나가 직접 궁술 지도 및 대결을 실시한다. 이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원전 문헌을 보면 그 기사 내용이 나타난다.


 정조 14년 10월 27일 갑술 “춘당대에 나가 별군직과 선전관에게 활쏘기 시험을 보게 하였고, 이를 이행하게 하였으니 각신.장신.별군직에게 편을 나누어 활쏘기를 명한 결과 문신이 무신보다 나았더라. 새로 등용된 초계문신들을 불러 용문에서 이 광경을 관람하게 하여 칠언근체시로 한 편의 시조를 짓게 하고 불에 구운 고기와 큰 술잔을 내렸더라. 저마다 모두 흥겹게 취하여 배불리 먹었으니 이를 태평시대의 성대한 일이더라.”


 특히 문무백관들의 <문무겸전>의 함양은 무예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정조 그는 무예관에서 승화된 무예지의 깨우침에 관한 심오한 이치와 사상을 문무백관들에게 설파했다. 직접 궁술 수련을 함께 하여 호국 무예의 총서인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는데 초석이 된다. 이 무예병법서가 편찬되어서 조선의 무예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확립하게 된다. 또 현재 우리가 전 세계에 무예문화로 자랑할 수 있는 무예서가 바로 “무예도보통지”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시대의 무예는 어떠한 모습인가!
 전용무예관 및 국립무예대학교가 단 한곳도 없는 실정이다. 이에 반하여 각 예술인들과 온 국민들이 참여 활동을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과 국립예술대학교가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각종 무예 종목들을 한곳에서 선보일 수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무예관이 있다. 각종 무예 종목에 관련된 대학들을 정부관계자 및 온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당대의 실천적 무예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정조의 무예관에 보이는 이치와 사상이 있다.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 중에 무예서적으로 제일 으뜸인 “무예도보통지”에 보이는 여러 무예를 계승.발전.재현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각종 무예를 펼칠 수 있는 전용무예관 및 국립무예대학교의 설립과 국내 각종 무예대학교에 대한 지원육성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무예인들과 온 국민들에게 우리의 무예문화 유산인 무예의 진정한 의미의 소중함이 무엇인가를 전해주어야 할 것이다.

송일훈 박사(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저작권자ⓒ 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daum
조원익 기자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