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고조선과 진국(辰國; 삼한), 동·북부여, 고구려의 상관관계에 의한 만주의 영토권(제12회)

조원익 기자 | news@thesegye.com | 입력 2020-01-14 12: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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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태조대왕이 일곱 살에 즉위하여 94년을 집권하였다는 것을 보면, 태조대왕이 아주 어렸을 때 국조왕은 즉위했고, 태조왕과 국조왕의 치적과 재위연수까지 혼합하기 위해서 그렇게 적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조왕이 죽은 해는 중국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들과 비교해서 적은 것이므로, '후한서'에 기록된 안제 건광 원년(서기121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손영종은 삭감된 다섯 명의 왕 중에서 유류, 여률, 막래, 애루 등 네 명은 찾아냈다고 했는데, 나머지 하나가 태조대왕과 얽힌 국조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 초기에 삭감된 5세손의 재위연수는 추모왕을 제외한 초기 다섯 왕의 재위연수를 합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다. 즉 유리왕부터 태조대왕까지 5명의 재위연수를 삭감된 5세손 왕들의 재위연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조대왕과 국조왕을 혼합한 이유 역시 고구려 건국연대를 늦춤으로써 역사를 삭감하기 위한 것이니 만큼 그 과정에도 삭감한 연수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대무신왕에서 민중왕과 모본왕으로 이어졌다가 태조대왕에게 이어진 것처럼 빤히 눈에 보이는 권력투쟁으로 인해서 그 재위기간이 4년과 5년에 그침으로써 일반적인 재위연수에 비하여 상당히 짧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태조대왕의 뒤를 이은 차대왕까지 포함시켜서 삭감된 5세손의 왕에 대한 재위연수를 6명으로 계산하는 것은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런 논리에 의해서 계산하면 유리왕에서 태조대왕까지의 재위연수는 165년이고, 차대왕까지는 184년이다. 기원전 37년에, 삭감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두 가지 연도를 더하면 기원전 202년과 기원전 221년이다. 고구려 건국연대에 대해서 기록한 고기들이 일률적으로 고구려 건국연대를 갑신년이라고 하였으므로 추정한 연대와 가까운 갑신년을 찾으면, 기원전 202년과 기원전 221년 사이에 기원전 217년(갑신년)이 있다.

 

 추정한 연대와 불과 4년과 15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다섯 왕의 재위연수가 추정하여 산출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추론은 차대왕을 포함하지 않고 태조대왕까지 5명의 왕에 대한 재위연수를 합산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기원전 202년에서 가장 가까운 갑신년을 찾아도 기원전 217년이기 때문이다. 태조대왕까지와 차대왕까지 두 가지로 연대를 계산한 것은, 추정에 의해 연대를 도출해 내는 것임으로, 좀 더 근접한 연대를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리고 기원전 217년은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조선과 국경을 마주한지 5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진나라는 기원전 206년에 패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섰으므로, 손영종이 고구려 건국연대를 소급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의 예로 제시했던, '삼국사기'에서 고구려가 진·한의 동북방에 있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만일 손영종의 주장대로 기원전 277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면 기원전 221년에 건국된 진나라를 뛰어넘어, 고구려가 연·진·한나라의 동북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했어야 옳은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국 연대는 기원전 217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것은 신채호가 주장한 바와 같이 기원전 190여년을 전후로 수십 년 동안을 고구려와 동·북부여가 분립한 시기로 보아야 한다는 이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건국 연대를 비정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가언충이 당 고종에게 말했다는 <유국 900년 설>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기원전 217년을 고구려의 건국연대로 하여 그 존립연대를 계산하면, 보장왕이 당나라에 항복한 668년까지는 885년이 되고, 보장왕이 당나라에 항복하여 고구려를 잃고 요동주 도독으로 지내며 조선왕으로 불리다가 죽음으로써 고구려 왕조의 막을 내리게 한 682년까지는 899년이 된다.

 

 반면에 손영종의 주장대로 고구려가 기원전 277년에 건국되었다면 보장왕이 항복한 해인 668년까지는 945년이 되고 보장왕이 죽음으로써 고구려 왕조가 막을 내리게 되는 682년까지는 959년이 된다. 945년이나 959년을 900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기원전 217년의 고구려 건국설이야 말로, 고구려가 건국 된지 900년이 되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고구려 건국연대가 기원전 217년(갑신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사료에 의해서 증명되어지는 것이다.


 위 두 사람의 논지를 살펴보면 고구려 건국연대가 소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기원전 277년과 기원전 217년의 논지를 놓고 본다면, 기원전 277년의 설정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여 설정한 신용우의 2019년 3월 '간도학보'에 발표된 「고구려 건국연대의 제정립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서 주창한 기원전 217년에 대한 이론이 더 타당하기에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217년으로 비정하기로 한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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