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훈 칼럼> 대한민국 체육.태권도계 대부! 고 김운용 전) IOC위원 역사적 재조명

조원익 기자 | news@thesegye.com | 입력 2017-12-07 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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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타임즈
 필자가 고 김운용(1931-2017)에 대해 생애를 피력한 이유는 2015년 한국체육인명사전 발간 사업에 한국체육학회 연구원으로 참여하는데서 비롯된다. 역대 IOC위원에 있어서 국익선양에 이바지한 인물 중 김운용이 선정되어 필자가 직접 인터뷰를 했다.

 

 

 고 김운용 전 IOC위원 그는 인터뷰하던 중 필자에게 여러 자료를 주었다. 대표적인 저서는 “미련한 자는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이라는 단행본이다. 필자는 그가 준 여러 자료를 탐독하고 그에 대한 업적과 삶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탐색해 보았다. 고 김운용 그는 전 IOC위원을 1986년~2005년까지 했으나 그가 남긴 업적은 대단했다. 아래는 2015년 당시 그의 인터뷰를 한 내용이며 일부만 발췌해 피력하고자 한다.


 김운용 전 IOC위원님! 처음 태권도계의 첫걸음 하는 시기는 언제이고 외교적 활동에 있어서 어떠한 일들을 모색했고 국가에 공헌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본인은 무덕관에서 처음 시작했고 1971년 전 세계연맹부총재 이종우와 태권도인들의 권유에 의해 태권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 보좌관과 학술원장 보직을 역임했으며 주미 대사관, 참사관, UN총회 한국대표부로 재직도 했습니다. 취임 초부터 많은 연구와 더불어 사업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 결실은 1971년 4월 15일 계간 <태권도>지 창간호를 발간하게 됐습니다. 고 박정희대통령의 “국기태권도” 휘호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표지와 규장각의 「규장지보」라고 새겨진 도장 등을 문서화해 새로운 태권도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이는 명실공히 전통을 전승·계승하는 역사성 재정립이었습니다. 이 발간의 내용에 있어서 실기적인 측면의 이론화와 최초로 태권도협회공인 『태권도교본(품새편)』(1972) 발간하게 되는데, 즉 기법체계의 초석이 됐으며 국기원 건립에도 추진했던 시기입니다. 이 건립은 전국에 난립되어 있던 태권도 10개관의 통합과 승단업무의 행정업무에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본인이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을 했는데 1973년이며 한국화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 됐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인의 주도적인 계획에 의해 “국기태권도 1971년 3월 20일 대통령 박정희”라고 직접 붓으로 기입한 휘호를 받게 됐습니다. 이후 세계태권도연맹(WTF)은 1975년 10월 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GAISF)에 가입하게 됐으며 국기 태권도가 한국화와 세계화에 들어서게 됩니다. 본인이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 자부합니다.


 이로 인해 국제화는 물론 올림픽 정식 종목화에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3년 WTF 창설하자마자 곧바로 GAISF에 가입했습니다. 본인이 오랜 외교관 활동으로 국제흐름에 정통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회장 겸 명예총무로 국제적 업무를 담당했기에 정보를 신속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태권도를 국제무대에서 공인받기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함께 세계스포츠 양대 기구인 GAISF 가입에 힘을 기울이었습니다.

 

 또한 1960년대 중반부터 월남에 파견된 군태권도 교관단의 활동으로 세계 보급에 총력을 다 했습니다. ITF와 일본의 가라테(공수도) 등 유사단체와의 국제무대 주도권을 잡기위해 태권도의 GAISF 가입은 태권도인 뿐만 아니라 본인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이는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기에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여 주도적으로 가입을 했습니다.

 

 본인이 1975년 8월 제2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영국출신인 오스카 스테이트 GAISF 사무총장과 국제체육기자연맹(AIPS) 관계자들을 서울로 초청하여 사전 정치적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 해 10월 캐나다 몬트리올 GAISF총회가 개최됩니다. 하지만 오스카 스테이트 총장으로부터 소식을 받게 되는데 국제유도연맹 회장겸 GAISF 집행위원 영국의 찰스 퍼머가 태권도의 가입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송박사님이 아시다시피 GAISF 가입은 만장일치로 결정돼야 하며, 단 한사람의 반대가 있어도 부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본인은 찰스퍼머 회장을 만났고 그에게 태권도의 한국 전통성 역사를 설명하고 가라테와(공수도)의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이후 총회 마지막 날 4시간에 걸친 토론 속에 태권도는 GAISF 가입에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해 4월 국제군인체육회(CISM)에 정식 종목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후 1980년 모스크바 IOC총회에서는 WTF의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승인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상입니다.”라고 했다.

 

 또 태권도 무덕관에서 서상렬 전 사무총장이 마지막으로 4승단과 함께 사범자격 인정서를 주었다고 한다. 고 김운용 전 IOC위원이 언급했듯이 그의 공로에 의해 태권도가 국제스포츠로서 눈부신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되며 그의 탁월한 스포츠외교력 정책 결과의 산물이었다.

 
 김운용 전 IOC위원님! 다음은 두 번째 질문입니다. 국기 태권도를 올림픽종목과 아시안게임으로 채택되기 위해 각고한 노력을 기울이었다고 들었는데 외교정책을 어떻게 전개해 나갔는지 묻고 싶습니다.

 
 "본인의 주도아래 국기 태권도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입니다. 당시에 야구와 배드민턴 등이 시범종목으로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당시 집행위원이 부위원장으로 활약했던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의 정치적 외교활동에 의해 배드민턴을 제치고 국기 태권도를 시범종목으로 채택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하이라이와 롤러스키를 시범 종목으로 채택됩니다. 올림픽 헌장에는 2개의 시범종목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었습니다.

 
 본인은 2000년 태권도의 올림픽 진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사마란치 IOC위원장을 찾아가 요청을 했습니다. 그에게 태권도를 시범종목이 아닌 올림픽규정에도 없는 전시종목으로 선정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올림픽 역사상 전래가 없었으며 전시종목은 본인이 심오한 고민 끝에 고안해낸 방안이었습니다.

 

 또한 사마란치 IOC위원장에게 한 체급 경기를 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모든 경기를 개최한다는 조건부를 제시했습니다. 즉 모든 경비와 선수보호 등 문제가 발생되면 한국과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란치 위원장을 설득하고 결국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또한 본인은 집행위원들을 설득하여 태권도를 시범 종목으로 격상시켜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3개의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독보적인 올림픽이 됐습니다.


 그러나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은 가라테(공수도)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고 태권도를 제외시켰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쿠웨이트의 세이크 아매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체육관계자들과 정치적 외교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 성과는 태권도를 8년 만에 아시안게임에 다시 정상위에 올려놓은 대업적을 이루었으나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 우슈종목에 의해 좌절의 쓴맛을 보게 됩니다.

 

 본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 개최한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는 IOC위원과 국제스포츠 관계자들을 국기원에 초청하여 국기 태권도홍보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1994년 9월 4일 파리 제103차 IOC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국기 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라고 했다.

 

 이를 보더라도 고 김운용 전 IOC위원의 그동안 무혼 결실의 산물이었으며 IOC내에서의 완벽한 업무능력 인정과 해외 태권도사범들의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총체적 역할을 했다고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김운용 전 IOC위원님! 세 번째 질문이 있습니다. 가슴이 아프겠지만 대한민국 체육·태권도계 대부이신 전 IOC위원님도 인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시련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본인이 그때 당시 생각하건데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IOC위원장 대권에 도전한 황색인종이라는 여러 국가 IOC위원들에게 뒤에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 태권도인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본인의 당선을 모두 기원했습니다. 지금도 감사한 마음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2001년 7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12차 IOC총회에서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많은 도움을 받았으나 IOC위원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음은 2000년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장직을 역임했던 시절 4월 16~19일 국기원에서 개최한 2001년도 국가대표최종선발전 일부 심판의 편파판정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희대학교와 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및 학생들이 항의하여 경기장 점거농성을 벌리는 등 시위가 심화되었던 시기입니다.

 

 그로 인해 태권도협회 간부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됩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지만 다 본인이 관리를 잘못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로 인해 본인은 2001년 11월 15일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판정시비가 많았던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 대해 이번 동계올림픽은 전 세계선수들을 결속시키는 올림픽 운동의 전통을 이어왔다며 했는데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는가! 봅니다.

 
 그리하여 2002년 2월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회장은 오늘로써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했던 말은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 체육의 위상을 높이는데 전념 하겠습니다고 밝히고 회의장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3월 12일 오후 여의도 국민일보사 12층 회의실에서 열린 체육회 부회장 및 KOC(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단과의 모임에서 “다시 한 번 회장직을 사퇴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지만 모든 공사에 있어서는 공명정대하게 펼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모든 경험은 후배들에게 지혜를 위한 방법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후 “미련한 자는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라는 저서를 발간하는 것도 이해 해당됩니다. 이상입니다.”라고 했다.


 이 같이 고 김운용 전 IOC위원은 1931년 대구 출생으로 경동고와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만 30세 때인 지난 1961년 당시 허정 내각수반의 비서관으로 관직에 들어선 뒤 영욕의 출세가도를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GAISF(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 WTF(세계태권도연맹) 총재직을 불명예스럽게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외교정책과 탁월한 지도력은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당시 고 김운용 그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미련한 자는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라는 저서를 발간하여 2009년 8월 26일 출판기념회를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기립박수와 함께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칭송 받는다.


 특히 “2015년도 스포츠영웅”에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양정모(62),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인 박신자(74),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인 고 김운용(84)이 선정됐다.

 

 즉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는 추천단과 체육단체, 시·도체육회, 언론사, 프로경기단체 등 국민이 추천한 후보자 45명 가운데 심사를 거쳐 이들 3명이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민국 체육계를 위해 참석한 올해 2017년 9월 27일 진천국가대표선수촌 개촌식에 참가한 김운용 전부위원장은 행사 직후 건강이 악화되어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10월 3일 새벽에 타계하여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위대한 그의 업적은 대한민국 체육·태권도계의 역사 속에 종속되어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고 김운용 전 IOC위원 그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역사적 함의가 있으며 앞으로 그의 무혼의 정신을 대한민국 태권도 및 체육계 계승발전 시켜야 할 것이다.


 송일훈 박사(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전)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연구교수
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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