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왕실의 추모 공간 '영희전'… 4권의 의궤로 다시 조명하다

이장성 / 기사승인 : 2025-12-09 06: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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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사편찬원, 조선 후기 왕실 어진 봉안처 ‘영희전’ 건축 과정 담은 의궤 4종 국역 발간
- 외규장각 의궤 2종 포함, 영희전의 건립부터 소멸까지 역사적 변천사 조명
-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 전자책 무료 열람, 서울책방에서 도서 구매도 가능
[서울 세계타임즈=이장성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조선후기 왕실의 어진봉안처였던 영희전의 건축 공사와 관련한 의궤 4종(남별전중건청의궤.진전중수도감의궤.남전증건도감의궤.영희전영건의궤)을 모은 국역서 ‘영희전 건축의궤집’ 1~4권을 발간했다.

 

○ 1권 《국역 남별전중건청의궤》(1677년), 2권 《국역 진전중수도감의궤》(1748년), 3권 《국역 남전증건도감의궤》(1858년), 4권 《국역 영희전영건도감의궤》(1900년)으로 구성하였다.

 서울에 오래 산 시민들에게도 영희전은 낯선 이름이다. 조선 왕실은 왕의 어진(초상화)를 모시기 위해 어진봉안처인 ‘진전(眞殿)’을 두었는데, 조선후기 대표적인 진전이 영희전이다. 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 등 여섯 왕의 어진을 모신 왕실의 중요한 추모 공간이었지만, 현재 건물은 사라지고 기록으로만 그 자취를 전하고 있다.

 4종 의궤는 영희전 건축 공사에 관한 내용이다. 영희전을 다시 짓고, 늘려 짓고, 새로 지었던 상세한 건축 공사 과정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공사 조직과 운영 체계, 건축 재료와 건물 배치도, 어진 봉안 의례와 행렬(반차도) 등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단순한 건물 변화뿐만 아니라 영희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사료인 것이다. 4종 의궤 가운데 프랑스에서 반환한 외규장각 의궤(남별전중건청의궤.진전중수도감의궤)도 있어 사료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세조와 원종의 어진보관처는 ‘남별전(南別殿)’이었다. 1677년(숙종 3) 정전 1실 규모였던 남별전에 태조 어진 봉안을 계획하며, 3실 규모로 중건되었다. 1688년(숙종 14)에는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1690년 전호(殿號)를 내려 ‘영희전’이라 하였다. 이후 1748년(영조 24) 숙종 어진을 봉안하며 5실 규모의 중수(重修, 낡은 건물을 손질하고 고침)가 이루어졌다. 1848년(철종 9)에는 순조 어진이 추가로 봉안되어 6실 규모가 되었다. 1899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도성 남쪽의 영희전을 경모궁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영희전은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영희전은 그 이름보다는 ‘경모궁지’(현재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병원 부근)로 불리고 있다. 또한 영희전에 봉안되었다가 일제강점기 동안 창덕궁 신선원전에 옮겨졌던 어진도 6.25전쟁 당시 부산 피난 중 소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번 책을 발간하며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번에 번역한 4종의 영희전 건축 의궤가 기록 속에서 이름만으로 현전하는 영희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영희전을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영희전 건축의궤집’ 1~4권은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에서 전자책으로 무료 열람할 수 있으며 구매를 원하는 시민은 서울책방(시민청 지하1층, store.seoul.go.kr)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12월 중 서울시 공공도서관에도 배포될 예정이다.

 

-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 : history.seoul.go.kr

 


□ 영희전 건축의궤집 1권 《국역 남별전중건청의궤》
   남별전중건청의궤: 도성 한가운데 태조를 기리는 장소를 만들다

 

임진왜란 이후 남별전은 세조와 원종(인조의 아버지) 어진을 봉안했던 사당이었다. 당시 남별전은 왕의 어진을 봉안하고 있었지만, 특별한 국가의례 장소로 역할을 했다기보다 보관처 역할이 중심이었다. 남별전이 진전으로 거듭난 것은 숙종 때이다. 1677년(숙종 3) 숙종은 도성 한가운데 왕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되찾기 위해 낡고 협소한 남별전을 다시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1실 규모였던 남별전은 3실이 되었는데, 태조의 어진 봉안을 염두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별전의 중건에 대한 논의와 건물 구조 변경, 공사 절차, 공역 조직, 의례 운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포함한 기록이 바로 《남별전중건청의궤》이다. 의궤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력과 각 지방에서 운송된 목재, 기와 등 건축 부재에 대한 설명과 석축(石築) 보강, 상량문, 어진 이안(移安)과 환안(還安) 절차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때 중건된 남별전은 이후 전주 경기전에서 옮긴 태조 어진을 봉안한 뒤 ‘영희전(永禧殿)’으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전하게 되었다.


□ 영희전 건축의궤집 2권 《국역 진전중수도감의궤》
   진전중수도감의궤: 영조, 영희전을 넓혀 숙종과 자신의 자리를 만들다

 

영조대의 영희전 중수는 숙종이 마련한 진전 체계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왕조의 기억과 국왕 권위의 공간적 구도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였다. 숙종은 태조 어진을 도성 안에 다시 모시고 자신 역시 외방과 궁궐 안에 어진을 봉안함으로써, 왕실 어진의 위상과 봉안 공간을 확대했다. 영조는 이를 이어받아 영희전·선원전·장녕전을 핵심으로 한 3대 진전 체계를 정리했다. 1748년(영조 24)은 태조 어진이 도성에 봉안된지 60년되는 해로, 기존 3실이던 영희전을 5실로 확장하고 새로 모사한 숙종의 어진을 4실에 봉안했다. 이와 함께 5실은 영조 자신의 어진을 모실 자리임을 직접 명시하였다. 《진전중수도감의궤》는 3실에서 5실로 확장한 공사의 전 과정과 의례, 공역 조직, 재정 집행, 가마·병풍·가구 제작, 이안과 환안 절차를 기록하였다. 영희전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확장과 함께 조선 후기 왕실 권위, 의례, 기억의 구조가 어떻게 재조정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사료이다.


□ 영희전 건축의궤집 3권 《국역 남전증건도감의궤》
   남전증건도감의궤: 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6실로 확장하다

 

19세기 전반기의 진전 운영은 영조 대에 정리한 제도가 유지되는 형태였다. 영희전은 도성의 공식 진전이었으며, 순조대와 헌종대 그려진 어진은 생전에 규장각과 연경당에 보관하였다가 사후 선원전이나 경모궁, 경우궁 등 사진 사당에 봉안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더 이상 증축하지 말라던 영조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1858년(철종 9) 철종은 5실 규모의 영희전을 6실로 증건(增建)하고 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그 역사적 배경에는 당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와 구심이었던 순원왕후가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철종 자신은 진전 봉안 대상에서 배제되어 종친부에 따로 ‘천한전(天漢殿)’을 마련하여 어진을 보관해야 했다. 《남전증건도감의궤》에는 19세기 진전 운영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담겨있다.


□ 영희전 건축의궤집 4권 《국역 영희전영건도감의궤》
   영희전영건도감의궤: 영희전, 본래 자리를 내주고 경모궁으로 옮겨가다

 

대한제국기로 접어들며 영희전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1900년 《영희전영건도감의궤》는 그 변화의 결정적 장면을 기록한다. 1899년 고종의 대대적인 추숭 사업과 권위 재정립 과정에서 영희전은 도성 남부의 변화로 더 이상 제향 공간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졌다. 당시 일본 거주지의 확장, 명동성당 건립 등 도성 남부의 많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영희전은 경모궁 터로 옮겨 새롭게 건립되었다. 의궤에는 영건 과정에서 훼철된 옛 영희전의 목재를 활용해 새 전각을 지은 일, 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 등 여섯 왕의 어진을 옮기는 의식도 기록되어 있다. 어진을 옮기는 장엄한 행렬은 생생한 반차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영희전을 지은 것도 잠시, 이 시기 진전 운영의 중심은 이미 선원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고종은 황제국 체제에 맞추어 태조부터 선대 군주들을 “황제”로 재정립하고, 선원전을 국가 의례의 핵심 공간으로 삼았다. 영희전은 1901년 영희전.목청전.화령전.냉천전.평락정.성일헌에 봉안한 어진을 선원전에 이안한다는 칙령과 함께 진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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