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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실제 공급량이 아니라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다. 최근 시장 흐름을 보면 이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주요 산유 시설이 대규모로 파괴되거나 수출이 전면 중단된 상황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빠르게 상승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先)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 시장은 다른 상품 시장과 달리 미래 가격을 반영하는 선물 거래 비중이 매우 높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트레이더(Trader)들은 공급 차질을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매수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실제 상황보다 더 빠르고 크게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국제 증권 및 외환시장에 투자해 단기 이익을 높이는 자금인 헤지펀드(Hedge fund)와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원유 선물 시장에서 대규모 포지션을 취하면서 가격 변동성(Volatility)은 더욱 확대된다.
무엇보다 ‘알고리즘 트레이딩(Algorithmic trading)’과 고빈도 거래가 결합하면서, 지정학적 뉴스 한 줄에도 가격이 롤라코스터처럼 급등락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번 유가 상승의 핵심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쟁이 불러온 심리적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실제 공급 감소가 확인되기 전에 이미 ‘공급 부족 시대’를 가정하고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은 단기적으로 과도한 가격 상승을 유발할 뿐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은 원자재 확보를 서두르고, 이는 추가적인 수요 증가로 이어져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작동하는 구조다.
실제로 중동 사태 여파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급속히 가속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고 원유 수급에서도 중동산 비중이 크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더욱 취약하다.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3월 26일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2.9%로 유지하면서도 유독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전망치를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2.1%에서 1.7%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 올해 중반 원유와 가스 가격이 안정을 찾는다는 것을 전제로 내놓은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OECD는 전쟁이 진정되지 않고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5달러 수준이 된다면 세계 경제 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물가와 금리는 상승 추세를 보이면서 국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 시장금리까지 뛰고 있다는 데 있다.
국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3년 5개월 만에 7%를 넘었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가 시장금리를 밀어 올리는 상황이다. 금리가 낮을 때 무리하게 빚을 얻은 가계나 기업들은 금리 추가 상승까지 대비한 위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듯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를 넘어서면서 금융 부담이 시장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월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3월 27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는 연 4.410~7.010% 수준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상단은 0.780%포인트, 하단은 0.480%포인트 상승했다. 5대 시중은행 고정금리가 7%를 웃돈 것은 2022년 10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중동 전쟁 발(發) 지정학적 리스크(Risk) 영향으로 시장금리가 빠르게 오른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은행이 대출 금리를 산정하는 핵심 지표인 은행채 금리가 상승한 영향도 크다. 특히 미국·이란 전쟁으로 은행채 3년물 금리가 3.9% 위로 치솟은 게 직접적 원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무보증 │ AAA) 금리는 지난 3월 27일 기준 연 3.499%에서 4.119%로 0.670%포인트나 치솟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직전인 한 달 전과 비교해 0.548%포인트 상승했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금리도 뛰고 있다. 신규로 대출을 받거나 대출 계약을 갱신할 때 이전보다 높은 이자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이틀 앞두고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3.6%까지 급등한 현상도 이례적이다. 환율 역시 1,515원까지 치솟아 올해 3월 들어 주요 통화 중 최약세였고, 코스피(KOSPI)도 확전에 따른 위험 회피 심리로 4% 넘게 하락했다. 그야말로‘트리플(채권·원화·주식) 약세’가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가계 빚은 지난해 말 2,000조 원에 육박했다. 이 빚의 절반 이상은 부동산 관련 대출이다. 더구나 증시가 호황을 보여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을 끌어다 쓴 ‘빚투(빚내서 투자)’도 늘었다. 금리가 오르면 이들 ‘빚투’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 투자자의 이자 부담은 커진다. 문제는 시장금리 상승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은행권에선 지난해 말 금리 하락기가 사실상 끝났다고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다 올해 중동 사태까지 터지면서 국채 등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다행히 중동 사태 위기가 단기에 진정되면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려 경기 침체에 대응할 수 있지만,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인플레를 잡기 위한 조기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수도 있다. 문제는 금융과 실물경제의 연결고리이자 건전성 지표이기도 한 연체율에 빨간불이 켜진 데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도 자영업자 전체 대출은 1,092조 9,000억 원으로 2024년 대비 9조 1,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대출 규모는 3억 4,000만 원(사업자 대출 2억 3,000만 원 │ 가계대출 1억 1,000만 원)으로 2024년 말(3억 3,000만 원) 대비 소폭 확대됐다. 연체율은 1.86%로 1년 전(1.68%)에 비해 0.18%포인트가 상승했으며, 2012~2025년의 장기평균(1.58%)에 비교해서는 0.28%포인트 높았다. 취약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2024년 말 113조 5,000억 원에서 2025년에는 114조 6,000억 원(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10.5%)으로 1조 1,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연체율은 12.14%로 전체 자영업자 연체율(1.86%)과 비교해 6배나 높다. 이렇듯 은행권 연체율은 0.56%로 11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고 자영업자 연체율은 위험수위인 1%에 육박했다. 2021년 ‘영끌’ 극성기 때 3%대로 빌린 주택담보대출 5년 혼합형의 경우 고정금리 기간이 끝나 최대 2배나 오른 변동금리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파고를 대출로 버텨온 자영업자들도 취약 차주들부터 무너지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한 건설·부동산 관련 대출에서도 다시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 최우선 재테크는 빚부터 줄이는 일이다. 이대로 가면 금융 건전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가와 환율 방어를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들이 연내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예상하며 기준금리 3% 도달을 점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35%를 차지한다.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이라고 해도 5년 후 갱신해야 하거나 변동금리가 적용된다. 금리가 오르면 차주의 고통도 함께 커지는 구조다. 복합 금융 불안에 맞서려면 거시건전성 감독과 시장심리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한 가계대출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리지 못하게 하는 ‘부채의 덫’이 될 우려가 크다. 금융기관들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대손충당금이 충분한지 점검하고 부실채권 정리도 서둘러야만 한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은 금리 상승기에 대출 부실이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목전의 급박한 복합 금융 불안 건전성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이번 중동 사태의 당사국이자 한 축인 만큼 한·미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체결을 다시 한번 더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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